1인 전용 시나리오. 원래 팀 세션이 있는 날이었으나 사정이 생겨 무산되고 대신 마스터님과 1대1 시나리오를 하게 됐다.
PC는 애니 러브록. 18세의 여자아이. 백인, 빨갛고 긴 머리, 주근깨, 작은 체구. 흉가 탐방을 좋아하는 약간 음침한 성격... 이라고는 하나 플레이에서는 오히려 발랄해졌다. 그 후 이미지 잡을 때는 저 설정을 거의 안 넣었다.
레일로드 방식이고 행동의 자유도는 제한적이다. 스토리의 분기가 정해져 있어서 특정 엔딩에 요구되는 요건이 존재한다. 감성적이고 아련한 분위기의 시나리오. 여운이 짙다. 자유도가 낮지만 몰입하기 쉽고 감정이 움직이기 쉬운 점이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들러야 할 방의 순서까지 거의 정해져 있는 시나리오이므로 큰 흐름은 간략하게 쓸 생각...이었는데 다 쓰고 보니 거의 로그를 정리해놓은 수준이다...??
눈을 떠보면 반투명한 유리벽 안. 기억나는 것은 이름과 나이, 그리고 어제 집에 있을 때 칼을 든 낯선 사람이 집에 들어왔던 것.
유리벽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해보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듣기 판정에는 실패했지만 민첩성의 절반으로 성공해서 물줄기에 직격당하는 건 피했다. 하지만 수조에 물은 차오르고... 열심히 밖을 둘러보지만 바깥에 있는, 검은 무언가가 가득 찬 수조뿐. 손으로 치고 유리를 걷어차봤지만 요란한 소리만 날 뿐, 깨지진 않는다.
이때 행운판정 성공으로 NPC 등장! 문이 열리는 게 보이고, 사람의 형체가 다가와서 수조에 뭔가를 하는 것 같더니 수조가 깨진다. 물과 함께 쓸려나오는 애니를 그 사람이 받아준다. 검은 상자를 얼굴에 쓰고 있는 듯한 사람. 매끈매끈한 상자 표면에 글자가 나타난다.
"HELLO, MY DEAR."
이때 뭐라고 반응해야 좋을지 모르겠었다. 애니가 극단적 성공을 했는데도 못 부순 유리벽을 부숴버리고, 인간 같지만 머리에는 검은 상자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그 상자 표면에 글자가 나타나는데다,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엄청 친근한 듯이 my dear라고 애니를 부르는 사람. 정말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가만히 그 사람을 보고 있는다'고 했다. 그러자 그 표면에,
"^^"
아 이거 너무 귀여웠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모티콘이 나올 줄은 몰라서 놀라면서도 귀엽ㅋㅋㅋㅋㅋ
사람이 맞아요?
"응"
사람이면 어떻게 보고 어떻게 글을 입력하는 거예요?
"이걸 통해서 볼 수 있어."
당신이 어제 그 범인이예요?
(대답이 없다)
"나는 오브젝트 헤드. 오브라고 불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도와줄게. 괜찮니?"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한쪽 벽을 가리킨다. 지도.)
자물쇠 표시가 있길래 열쇠를 찾아야 하나 생각했다. 다시 대화.
열쇠를 찾아야 하나요?
"카드키"
(자물쇠 표시가 5개길래) 카드키는 총 5개예요?
"3개"
도와줄래요? 우리 같이 나가요.
"응"
이쯤부터 오브를 신뢰했던 것 같다. 신뢰라기보단 아무튼 얜 날 해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범인이 아니라고는 못 하는 점에서 흑막이거나 최소한 관련자일 거라는건 눈치챘지만 그래도 나가게 도와주겠거니 했다.
정면의 자동문을 나가서 캡슐이 있는 방. 어둑한 방에 캡슐이 5개 눕혀져 있다. 그쪽으로 다가가려 하면 오브가 팔을 붙잡는다. 어둠 속에서 나타나는 두 개의 형체.
위험한 사람들인가요?
"조심해"
얼굴 형태가 무너지고 살이 녹았다가 다시 돌아오길 반복하는, 애니가 입은 것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전투 시작. 오브가 주문을 외운다. 한 명은 주문을 맞고 날아가버렸지만 앞에 있던 놈이 애니의 살점을 물어뜯는다. 애니가 얼굴을 가격하자 더 이상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참혹한 상처를 입은 애니. 오브가 다가와서 응급처치를 해준다. 성공.
우와 멋져요!
"^^;;"
처음 "^^"에서도 느꼈지만 이쯤에서 확신했다. 이 사람은.... 분명 아저씨야...... 이모티콘에서 아재의 기운이 묻어나...
오브는 자기가 입고 있는 가운을 벗어서 움직이지 않는 그 형체들에게 덮어준다. 백의 안에는 평범한 청바지와 셔츠. 몸을 관찰해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30대 중후반 정도의 남자이고, 인간의 몸이다. 상자도 탈부착(?)이 가능한 것 같다.
뭘 찾는 거예요?
"네모난, 보라색 카드키"
같이 찾아줄게요.
방을 뒤지다가 검은 금속을 발견한다. 오브에게 이게 뭐냐고 물음. 전기총이라고 하고, 자기가 쓰겠다길래 그러라고 했다. 사격 안 찍어서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이제사 생각하면 방심했던 것 같다. 총이라는데 정체를 모르는 상대에게 넘기다니... 정말로 오브가 적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나보다.
"전기총"
"괜찮다면 내가 써도 될까?"
"고마워"
방을 뒤지다가 초록색 카드키를 발견.
"이건 안 돼, 다른 방"
상자 표면에 글자 출력은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물어봤으면 마스터님이 뭐라고 대답했으려나.
문으로 나가면 발목 높이에 비상등이 켜져 있는 복도가 있다. 바닥에는 온통 검은 자국. 흉가 체험을 다닌 경험을 토대로 아이디어 판정을 해서 성공한 결과, 이건 아주 오래 전에 뿌려진 피라는 걸 알게 된다. 애니는 까치발을 하고 피가 안 튄 곳을 디디며 방문에 다가간다
"방은 저쪽이야"
화분이 있는 방. 초록색 카드키를 갖다대면 문이 열린다. 조심스럽게 들어가자 천장에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이 보인다. 오브는 들어온 순간부터 하늘을 보고 가만히 서있다.
왜 그래요?
"아니야,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걱정하지 마"
잠시 쉴래요? 여긴 내가 찾아보고 있을게요.
"그래, 고마워"
이 부분도 너무 좋았어....ㅠㅠㅠㅠ 오브 대사도 좋고 내 알피지만() 잠시 쉬고 있으라고 했던 것도 좋았고 고맙다고 하는 오브도 좋았다.
선반과 화분을 발견. 저걸 잘 배열해서 올려놔야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선반을 뒤졌으나 관찰력 실패... 강행 실패... 강행 실패의 댓가로 물건이 떨어졌던가 미끄러져 넘어졌던가 해서 다친다.
"괜찮아?"
ㅇㅇ... 하지만 미리 도와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일어나면 비료봉투들 사이에서 식물도감 발견. 책갈피가 하나 떨어진다. 보라색 꽃을 말린 책갈피. 책갈피에 붙어 있는 꽃은 화분에 있는, 작은 보라색 꽃.
오브, 이 꽃 이름이 뭔지 알아요? 저기 저 화분의 꽃이랑 같은 것 같은데.
"헬리오트로프. 내가 좋아하는 꽃이야."
식물사전에서 헬리오트로프를 찾아서 꽃말을 확인하고, 선반에 화분을 맞게 올려놓는다. 빨간색 카드키 겟!!
오브! 이것 봐요! 찾았어요! (오브를 돌아보며 카드키 손에 들고 흔든다)
난 내가 이 세션에서 했던 알피 중에서 이 부분이 제일 좋았다. 환하게 웃으며 찾은 카드키를 자랑스레 들고 붕붕 흔드는 애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오브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이 부분으로 좀 더 연성을 해보고 싶어서 짜둔 것도 있지만... 후기만 4개월 걸렸고...
그런게 갑자기 작은 게 계속 부딪히는 듯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나가는 편이 좋을 것 같아"
방을 나가지만 문은 계속 열려있다. 뒤를 돌아보면 벽이 열리면서 하얀 뼈가 쏟아지고, 그 뼈가 재조립되며 인간 모습을 하고선 뛰어온다.
"문을 잠가!"
오브는 느낌표까지 출력했다. 마침표도 잘 안 찍는 사람이 느낌표를 찍으니 급박함이 전해진다. 카드키를 갖다대자 아슬아슬하게 문이 닫힌다.
"넘어지는 것 같았는데, 잠시 보여줄래?"
아까 넘어진 상처를 치료한다.
고마워요.
"^^;"
귀엽네요, 그거.
":) 고마워..."
아저씨다!! 확실히 아저씨야!!!!! 근데 귀여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나온 ^^;가 역시 너무 귀여워서 참지 못하고 귀엽다고 말해줬더니 더 귀여운 짓을 하는데 이 NPC 어쩌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카드를 보면서 잠시 대화.
예쁜 꽃이네요.
"응, 꽃말도 꽃도 정말 예쁜 꽃이야"
전 꽃은 잘 모르지만, 이 꽃이 좋아질 것 같아요.
여기서 분위기를 파악하겠다며 잠시 끊고 헬리오트로프를 검색해서 사진 보고 왔다. 근데 꽃말이 헌신인데 이게 예쁜 말인가...? 이 생각을 플레이 중에 하진 않았던 것 같지만.
뒷면에 보라색 글씨로 쓰여진 편지를 확인. 'From. 애니'를 보고 '나랑 이름이 같네...?'라며 중얼거린다. 오브는 반응이 없었던 것 같다.
"저쪽 방이야"
마스터님이 맞은편 방이라고 해서 지도상의 오른쪽 방이라고 생각했으나 사실 가운데 방이었다.
괴물이 있는 방. 기계와 금속 원통과 관들이 있고 빛이 반사되는 방. 이건 뭔가 싶어서 당황해하고 있는데(오른쪽 방의 지도를 보면서 설명을 들어서 더 헷갈렸던 것도 있었을 것 같다) 오브는 덤덤하다.
여기가 뭐 하는 데예요?
(침묵)
아니 이사람은 왜 방만 들어오면 굳는 거야...??
방 중앙에서 에른스트 쉴러의 이름이 적인 통을 발견. 안에는 뇌가 있고, 옆에는 생체 캡슐이 있다. 캡슐에는 처음 보는 생물이 들어있다. 곤충같은데, 인간 크기만큼 크다. 털이 달린 날개 같은 기관이 붙어있다. 털이 난 꼬리, 12개의 다리, 전체적으로 분홍색인 그 생물은
애니는 이게 지구에 있는 생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버린다.
이성판정 실패, 지능판정 성공. 광기를 얻는다. 주사위를 굴려보니 책에 대한 집착증. 마침 화분이 있는 방에서 식물사전을 들고 나온 걸로 해서, 들고 있던 식물사전에 대한 집착증으로 했다. 책을 들고 있던 캐릭터에게 책 집착증을 주시다니 역시 다이스갓 오오... 손끝이 하얗게 될 정도로 식물사전을 꼭 붙들어 안는 애니.
저게 뭐죠?
"..."
캡슐 옆 모니터에서 '미고 파괴 작업 대기 상태. 이 작업을 시행하려면 마스터 카드키가 필요합니다'라는 문구를 읽는다.
마스터 카드키라뇨?
"네모난, 보라색 카드키"
이걸 파괴해야 하나요?
"결국은... 너에게 달려 있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기억이 확실하진 않지만 이렇게 물었던듯)
"..."
약장을 관철해서 로이프놀이라고 쓰여진 텅 빈 약병과 그 뒤의 노란색 카드키를 얻는다. 무슨 약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교육 판정 실패. 관들도 뒤져보지만 별다른 게 나오지는 않는다.
책갈피에 쓰여진 에른스트라는 이름과 저 통에 쓰여진 에른스트라는 이름... 같은 사람일까요?
"그렇겠지"
아는 사람이예요, 오브?
"알고 있어."
동료예요?
"큰 실수를 했지..."
오브가 에른스트 본인이겠구나 짐작은 했다. 나와 에른스트=오브는 아는 사이고, 그 책갈피를 만든 사람은 나겠구나, 근데 무슨 사정이지 싶었다.
책장이 있는 방. 노란색 카드키로 문을 열면 생활감이 있는 방이다. 책장과 옷장과 긴 테이블. 책장 가운데에 생뚱맞게 옷장이 있다고 해서 옷장을 열려 하면 열리지 않는다. 옆 책장에는 부자연스럽게 빈 공간이 있다. 관찰력으로 굴려보면, 딱 식물사전이 들어갈만한 빈 자리. 하지만 애니는 식물사전에 대한 집착증이 있다. 식물사전을 놔야 한다는 건 깨달았지만 손에서 뗄 수가 없는 상태. 시험삼아 식물사전을 빈 자리에 놔본다. 찰칵 하는 소리가 들리며 열리는 옷장. 혹시나 하고 식물사전을 다시 꺼내본다 했더니 다시 문이 닫힌다고 하는 마스터님... 엉엉...
애니는 덜덜 떨면서 오브에게 도움을 구한다.
오브...
(침묵)
아 서있지만 말고 좀 도와달라고ㅠㅠㅠㅠ
오브가 안 도와줄 것 같길래, 다시 식물사전을 빈 자리에 올려서 옷장 문을 열었다. 그리고 책에 손을 댄 상태로 옷장을 관찰. 고급스러운 여성용 옷과 네이처지 과월호 한 권.
일단 저 책을 꺼내서 읽어야 하겠구나 싶었다. 책에 손끝을 댄 상태로 최대한 멀리 팔을 뻗어서 잡지를 집겠다고 했다. 다행히 마스터님이 인정해줬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끝으로 잡지를 집어들자마자 다시 식물사전을 품에 꽉 안았다는 알피를 했다. 여성용 옷은 잊혀졌다.
모국어로 굴렸으나 실패, 강행에 성공. 논문을 읽는다. <브레인 맵핑 기술을 기반으로 제작한 클론이 오리지널의 기억을 계승할 가능성>
.....????? 뭐라고요....???? 아니 이거 시나리오 배경이 현대랬잖...??? 아니 근데 이거 네이처지....??
그리고 논문에서 카드가 떨어진다. 내가 클론이라는 내용과, 주문에 대한 내용.
오컬트 지식을 사용해서 이 주문이 잘 만들어진 가짜인지 확인해본다. 판정 성공. 이건 진짜같은 느낌이 든다.
네이처지의 연도를 보면 2021년. 뭐라고요 지금은 2016년인데...??? 교육으로 굴려서 이게 가짜인지 확인해보면, 이건 분명 가짜가 아니다. 지금은 최소한 어제로부터 5년 이상 지난 시기이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잠시 방황. 옷장에 있는 옷들의 주머니를 뒤져봤으나 뭐가 나오진 않았다. 그러다 마스터님이 마호가니 테이블 묘사를 처음에 빠뜨렸다면서 사진, 신분증, 수기 등이 엉망으로 널려 있는 마호가니 테이블을 묘사해줬다. 그런데 옷장에서 카드와 논문을 먼저 보고 테이블의 수기를 보는 편이 흐름이 좋아서, 테이블보단 옷장에 먼저 관심이 가게 하는 편이 더 좋은 것 같다.
테이블에서 먼저 사진을 본다. 두 사람의 모습이다. 검은 머리에 키 큰 백인 남자가 하얀 가운을 입고 있다. 다른 사람은 토라진 듯한 자기 자신의 모습. 자신은 1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신분증은 에른스트 쉴러의 것이다. 사진과 이름과 주소. 신분증의 사진은 사진의 백인 남자이고, 주소는 아캄 시.
대학노트에 적힌 수기를 읽는다. 모국어 판정 성공.
눈치는 챘다지만 역시 좀 충격이었다. 수기가 정말로 미쳐 있는 사람의 글이어서 당황했다. 난 오브를 믿었지만 오브가 미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서. 이런 과거가 있을 줄은 전혀 생각을 못 했다.
플레이어인 내가 뭔가 감상 같은 걸 느끼기 전에, 아직 당황하던 중에 아이디어 판정, 모든 기억이 돌아온다. 에른에게 입양되었던 날, 함께 지낸 즐거운 나날들, 몰래 흉가탐험 가면 어떻게든 쫓아와서 한참 잔소리를 하고는 풀밭에 함께 앉아서 올려다보던 밤하늘.
이성 판정 실패, 이성을 6 깎이며 광기를 얻는다. 주사위를 굴린 결과 분노에 차서 주변을 공격하는 증상. 오브, 아니 에른에게 '당신이 날 그렇게... 그렇게 했던 거였어요?!'라고 소리치며, 손에 들고 있던 식물사전을 휘들러 에른을 후려친다.
에른은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서 말한다.
-내가 기억나버렸니?
-...
-괜찮아. 말하지 않아도, 나는 너를 잘 알고 있어. 무척 잘 알고 있어. 다정한 내 애니.
오브가 말했어ㅠㅠㅠㅠ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서 말한다는 묘사에 심장이 철렁. 에른ㅠㅠㅠㅠ
이때는 사실 오브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은 없었다. 왜냐면 난 수조 속의 시체도 못 봤고, 오브에게 내가 누구냐고 물었다가 '나도 아직은 모르겠어'라는 대답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오브 이자식 정말..... 하아..... 이건 나중에 감상 포스트에서 따로 풀 예정.
아무튼 실제 플레이에서는 이쯤에서 아련함이 폭발. 오브ㅠㅠㅠㅠㅠㅠ 오브야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내가 이걸 아련함만 터졌을 때 후기로 남겨놨으면 좋았을걸... 지금은 이미 늦었어 난 이미 애니로서 오브에 대한 애증을 느끼고 키워버렸어....... 아무튼 당시는 너무 가슴이 아프고 먹먹했다. 으아아 날 입양해준 아버지였어ㅠㅠㅠㅠ 아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죽은 뒤 날 위해ㅠㅠㅠ -->이런 느낌
그리고 오브와의 전투 시작. 붉은 노이즈가 낀 오브가 들고 있던 전기총을 휘두른다. 회피 성공. 팔을 쳐서 전기총을 빼앗는다. 그리고 에른을 향해 쏜다....ㅋㅋㅋㅋ.ㅋ......... 패륜을 용서하세요 아버지... 저도 살아야죠......
근데 설득할 생각 안 하고 공격하길래 일단 때리고 보자 한 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웃기고... 아 근데 주문도 쏘고 전기총도 있는 성인 남자가 날 공격하는데 아무리 가족이고 아버지여도 일단 내가 살고 봐야지. 오브가 잠시동안의 광기에 걸려서 곧 돌아올지 아니면 영영 정신 못 들고 날 죽이려 들지 모르니 일단 나도 공격.
전기총에서는 뭔가가 발사되나 빗나감. 오브도 애니를 때리려 하나 빗나간다. 반격 실패. 에른이 다시 목을 조르려 시도하길래, 식물사전으로 목 부분을 가격한다. 검은 상자의 노이즈가 사라진다. 나이스 식물사전!!!! 다용도로 참 많이 활용되는 사전이었다. 그리고 오브는 이 사전으로 총 두 번 후려맞았다.
그러고 나서 오브가 공격을 멈추길래 식물사전 덕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시나리오를 보니 3라운드가 끝났던 것. 오브의 절절한 심경 고백 시간. 먹먹하고 눈물이 나는 부분이었다. 마스터님은 '사랑해, 애니' 라는 부분은 너무 민망하다며 말하지 않았다고 후담에서 말했다...
-상자 벗어볼래요? 얼굴 보고 얘기하고 싶어요.
-별로 보고 싶지 않을 거야.
에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때부터 내가 에른을 위해 뭘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려
-에른... 당신이 죽는 걸 원하면 그렇게 해줄게요. 어떻게 하고 싶어요...?
라고 묻는다. 정확히 저 대사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네가 원하면 널 죽여주겠다'는 뜻을 전달. 왜냐면 수기 마지막 페이지에서 에른이 '나를 죽이렴, 제발'이라고 썼길래. 정말 너무 아련하고 먹먹하고 슬퍼서 뭐라도 다 해주고 싶었다. 소중한 가족을 죽이는 일이라도, 그게 당신이 원하는 일이라면.
그리고 마스터님은 여기서 매우 당황했다고 한다....ㅋㅋㅋㅋㅋㅋ... 죽이면 배드엔딩이기 때문에... 그래서 에른은 ㄴㄴㄴㄴㄴ나랑 같이 미고를 죽이자 라고 말했던 듯. 그래도 뭔가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는 온갖 것을 다 물어봤다. 뇌가 적출당했으면 당신도 죽는 거 아니냐, 당신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등... 자세한 대화는 적어놓지 않았지만 오브는 미고를 파괴하고 나와 같이 나가자고 설득했던 것 같다. 미고를 파괴하면 나도 오래는 살지 못하지만 그렇게 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아직 오브가 진짜로 바라는 건 자기를 죽여주는 게 아닌가 싶은 의심을 떨치지 못했지만... 아니라길래 미고만 죽이고 나가기로 한다. 더 의심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메리골드 엔딩으로!!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을까봐 한참을 질문했다. 정말로 내가 당신을 구할 수 없는 거예요? 오브는 이미 너무 늦었다며, 자기와 함께 미고를 파괴하고 돌아가자고 했다. 미고를 파괴하면 자기도 죽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고, 괜찮다고. 묻고 또 묻다가 정말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안타까운 마음에 오브를 꼭 끌어안는다고 말하자, 마스터님은 오브도 애니를 가만히 안아준다고 말했다.
다시 괴물이 있는 방. 카드키를 모니터에 대면 모니터에 패스워드 입력란이 뜬다.
[password hint: my dear]
애니는 자기 이름을 친다. 입력을 끝내면 오브가 눈을 가려준다. 믹서기가 갈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가 곧 멈추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캡슐 안에는 분홍색 조각들만이.
둥근 철문에 보라색 카드키를 인식시키자 문이 열린다. 밖은 울창한 여름의 숲이다. 막 동이 트고 있다. 에른은 애니를 이끌어서 한쪽으로 데려간다. 눈에 익은 에른의 차가 있다.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왔다. 애니는 실종으로 알려져 있었다.
열흘 후, 집에 온 애니는 편지 한 장을 발견한다. 그리고 메리골드 꽃다발 하나가 놓여 있다.
이 꽃의 꽃말은 반드시 올 행복. 애니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이 세계 어디에서든 반드시 행복하렴.
이렇게 끝. 메리골드 엔딩.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보니 이게 진엔딩이겠구나 싶었다.
'탐사자는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예감하며, 그가 남기고 간 마음을 받아들여 진짜도 가짜도 아닌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합니다'라는 부분을 들으며 덤덤하게 숲 속의 한적한 집에서 혼자 살아갈/죽어갈 애니를 떠올렸다. 말 그래도 진짜도 가짜도 아닌 삶일 것이었다.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살아가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삶을 조용히 이어나갈 애니가 그려졌다.
음 어쩌다가 이런 후기가 나왔지... 후기보다는 로그 정리같은데...
지금까지 중 유일하게 후기를 쓰겠다고 명시적으로 약속한 세션이었는데 마스터님이 생각했던 후기와 같을지.... 모르겠다... 이거 후기 맞나...?? 하지만 이 세션의 아련함을 전달하고 싶었어... 근데 전달이 안 된 것 같아...
위에서도 썼지만, 내가 생각한 오브는 아버지 포지션. 나는 왠지 너무 자연스럽고 너무 당연하게 아버지라고 생각해서, 나중에 후기 검색해보다가 자캐&앤캐로 많이 플레이하시는 걸 보고 좀 놀랐다. 앤캐라고 해도 아련함과 애절함이 커서 괜찮을 것 같다. 앤캐였으면 못 때렸을 것 같...기도... 에필로그에서 오브가 사라졌을 때도 아 에른은 죽으러 갔구나, 이제 돌아오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하고 덤덤하게 삶을 이어나간다고 생각했던 것도 아버지로 인식해서였을지도.
사실 지금은 오브에 대한 내 감정이 크게 변했다. 그 얘기는 나중에... 오늘 다 쓰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플레이 후기뿐만 아니라 감상에 대한 내용도 따로 포스트로 쓰게 되는 엄청난 시나리오 헬리오트로프... 4개월 동안 애니가 내 안에서 자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