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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멀리 있는 당신에게(원작자 디라스티트님. https://shadowcolors.postype.com/post/458163/)
룰: 크툴루의 부름
마스터: 로릭
인원: 1인
형식: ORPG, 텍스트
날짜: 2017년, 생각보다 탐라가 덜 시끄럽던 만우절
<네게 헬리오트로프를> 후속작 <멀리 있는 당신에게>를 플레이. 정확히 두 달 만에 쓰(기 시작하)는 후기.
PC 설정은 헬리오트로프 후기에, 후속작에 임한 자세는 따로 포스팅한 글에 있다.
<네게 헬리오트로프를>을 플레이한 뒤 특정 엔딩을 본 탐사자로만 플레이 가능하다. 스포일러가 포함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서.
나에게도, 애니에게도 4개월이었다. 헬리오트로프 플레이 이후 나의 시간과 애니의 시간은 비슷한 속도로 흘렀다.
오브의 죽음으로 애니의 이야기가 끝났고, 끝난 채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했기에 플레이를 할 지에 대해 조금 망설였지만, 애니에게 남은 평생에 걸친 싸움과 매 1초마다 1초만큼의 자신의 생명력을 죽여가는 자살 같은 삶 대신, 가능하다면 미래를 주고 싶었다. 아버지 에른스트의 사랑에 목이 졸려 죽어가는 애니가 독립하게 된다면, 그 결과로 죽음을 되찾든 혹은 비로소 삶을 시작하든 애니에게는 더 좋은 결과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능하다면 오브 멱살도 좀 잡고 싶었는데, 이건 시나리오 내에서 기회가 없을 걸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스터 로릭님에게 후기와 잡담을 보여준 뒤 플레이 시작. 세션 순서대로 후기를 쓰려는 욕심을 포기한 건 헬리오트로프 후속작 플레이 일정 때문이었다. 헬리오트로프 후기를 대사까지 넣어서 자세하게 쓴 것도 당시 상황을 최대한 다 담아야 후속작 진행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이번에도 헬리오트로프 후기처럼 로그 정리에 살을 붙이고 내 감상을 쓰는 느낌으로 갈 생각.
늦은 저녁에 플레이를 시작했다. 처음엔 보이스였다가 보이스가 갑자기 안 돼서 텍스트로.
4개월 동안, 애니는 학교를 마저 다닌다. 하지만 수업만 듣고 부활동도 안 하고 친구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이 혼자 조용히 지나고 있다. 좋아하던 흉가체험도 안 간 지 오래.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틀어박혀 혼자 보낸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건 자신과 에른에 대한 것. 의식을 잃었다가 되찾았을 때 이미 인간이 아니고, 진짜도 가짜도 아니게 된 자신에 대해.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모른 척 살 수 있을지, 그래도 될지에 대해. (마마마의 사야카랑도 비슷한듯.) 에른스트에 대해. 그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그는 결국 '나'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 아니었나?
애니는 우울증이 심해져서 매사추세츠 주립병원에 다니게 된다. 2주만에 내원했고, 여느 날처럼 상담과 치료는 끝났다. 하지만 애니는 자신의 죽음과 정체, 그리고 경험에 대해선 말하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걸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담을 할 때면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빙빙 돌려서 말하는데, 그러면서 더 지치는 것 같다. 상담을 할수록 더 답답하고 힘들어지는 느낌. 그냥 약만 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마음 속으로만 생각한다.
상담을 마치고 로비에 앉아 대기하다가 꽤 큰 개를 데리고 있는, 뿔테 안경을 낀 여자에게 시선이 닿는다. 별 생각 없이 보고 있자 여자가 다가온다.
'강아지 귀엽네...'
'아 옷자락 당긴다 귀여워'
"저... 혹시..."
네?
"애니 러브록 씨인가요?"
아,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저는 아스트리데 에이브리. 당신의 보호자의 친구예요."
...?
헉 보호자라면 설마?!
보호자라면... 설마 에른이요?!
깜짝 놀라서, 병원 로비에서 반쯤 소리치며 되묻는다.
"네. 에른의 친구예요. 에른의 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기다렷어요."
잠깐만요... 에른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신데요?
눈앞의 여자를 관찰한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 날씬한 체격에 다소 병약해 보인다. 뿔테 안경에는 지문이 끼어 있다. 나중에 시나리오를 보니 심한 약시임을 파악할 수 있는 정황이었는데, 당시에는 안경을 잘 안 닦는 사람이구나 했다(..
"대학 시절 친구예요. 잠시 시간을 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에른을 최근에 언제 만나셨죠? 제가 여기 다니는 건 어떻게 아셨고요?
일단 경계. 에른이 죽기 직전에 만난 건지(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면 '애니'가 죽기 전에 만난 건지 알고 싶었다. 애니의 클론을 만드는 일에 동참했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경우에 따라 적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저는 의사였어요. 여기에는 제 은사님들이 많이 계세요."
"에른을... 마지막으로 본 건 5년 전이죠."
흠 5년 전이면 '애니'가 죽기 전이군. 아마 직전이려나? 애니가 클론인 걸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경계를 줄이고 얘기를 들어보기로 함.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카페로 자리를 옮겨도 될까요?"
매사추세츠 주립병원 근처 카페로 이동한다.
강아지가 귀엽네요. 이름이 뭐예요?
"하트, 라고 해요."
이름도 예쁘네요.
"아주 영리한 애예요."
애니는 경계가 풀어져서 아스트리데의 미소에 미소로 답한다. 이것이 애니멀 테라피(?)
아스트리데는 아늑한 카페로 들어간다.
"여기라면 하트를 데리고 들어가도 괜찮으니까요."
그렇군요. 멋진 곳이네요.
자리에 앉으면 아스트리데는 할 말을 정리하는 듯 잠시 말이 없다가 사진 한 장과 편지를 내민다. 애니는 그걸 받아서 읽어본다. 학사모를 던지며 웃고 있는 에른과 아스트리데의 모습. 편지에는 5년 전 겨울의 소인이 찍혀 있다. 에른이 쓴 편지. 5년 전 겨울이 애니가 죽은 이후인지 묻자, 죽었을 즈음이라고 로릭님이 답한다.
‘진리의 탐구자들은 또 바보같은 짓을 벌이겠지. 아디, 그 일로 너를 탓하지는 않을게. 그저 내가 돌아오지 않게 된다면 애니를 부탁하고 싶어. 신뢰를 담아, 에른스트 쉴러.’
'그 일'이라니? 아스트리데에게 무슨 의미인지 물었다.
"그건... 제가 어리석은 일을 했기 때문이예요."
애니는 말로 독촉하진 않고 잠자코 그녀를 바라본다. 아스트리데는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책이 '무료한 남자'와 접촉하는 열쇠임을 알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리고 영구히 약시가 되었다고. 그러나 그 일로 그 책이 진짜임을 확신하고, 무료한 남자와 접촉하는 주문을 '진리의 탐구자들'에게 알려준다. 에른스트는 그녀를 말리고, 진리의 탐구자들을 내부에서 훼방놓으려고 했지만 결국 들켜버렸고, 그의 약점을 공격당한다.
설마...
애니는 소름이 쫙 돋는 걸 느낀다. 그것이 내 죽음의 이유였구나.
"제가 그의 집에 달려갔을 땐... 치사량에 가까운 피만 남아있었어요."
"정말 미안해요."
난... 난 그때...
칼을 든 남자가 집에... 들어와서...
애니는 떨리는 몸을 양 팔로 감싸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뚝 떨어뜨린다. 아스트리데는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아스트리데는 그 광경을 보고서야 끔찍하게 후회했고, 5년 동안 미친듯이 애니와 에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진리의 탐구자들을 저지하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최근에야 에른스트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애니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에른스트가 어디에 있는지, 라뇨?
에른스트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는 건가요?
"그는 지하 벙커에 감금되어 있어요. 미고의 다른 개체가 그를 데리고 있을 거예요. 어쩌면 무료한 남자도... 함께 있을지도 몰라요."
에른이... 살아있다고요?
에른이...
에른이 죽은 줄 알아서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고 하는 말에 깜짝 놀랐다. 정확히는 자살하러 간 줄 알았다... 메리골드 꽃 두고 스스로 죽으러 간 줄 알았는데...
"어쩌면 당신이 아는 그 다정하고 똑똑한 사람은 아닐지도 몰라요."
"어쩌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살덩이 같은 꼴이 되어 있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그를 돌려받고 싶나요?"
애니는 문득 뇌가 적출된 시체의 모습을 떠올린다.
검은 수조 안을 직접 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수기에서 읽은 내용은, 뇌가 적출된 시체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 높은 수조의 광경은 지난 4개월 동안 자꾸 꿈에 나오곤 했다. 자신을 공격하던, 뇌 없는 자신들. 망가진 자신들. 에른도 그와 같은 상태겠지. 함께 지낸 열흘 중에, 애니는 결국 '오브'의 검은 상자를 벗기지 못했다. 망설이던 손끝은 상자 표면에 닿지도 못하고 거두어졌다. 벗겨냈다간 자신이 애써 부정하고 가리려 해온 것들을 그 안에서 직면할 것 같아서. 그것은 이로운 것이라곤 담겨있지 않은 판도라의 상자였고, 애니는 호기심이 아닌 두려움에 굴복했다.
애니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흘렀던 눈물을 손으로 쓱쓱 닦아내고는 고개를 든다.
그에게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어요.
결연한 표정으로.
사실 이때부터 멱살을 잡기 위한 포석이었습니다ㅋㅋㅋ.... 기회가 없을 건 알았지만 미리미리 준비하고 밑밥을 깔아둬야 혹시 기회가 왔을 때 멱살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거죠!
"저는 하트와 함께 당신을 도울 거예요. 그게 지금으로선 제가 할 수 있는 속죄니까요."
좋아요. 그에게 가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아스트리데는 폭파되었다고 믿었던 그 연구소의 지하에 숨겨진 벙커가 있다고 말한다. 그곳에 가서 미고와 거래해서 에른을 되찾아올 거라는 말에, 애니는 캡슐에 들어 있던 미고의 모습을 떠올리고 다시 소름이 돋는 걸 느낀다. 다른 개체가 또 있었구나.
미고와 어떻게 거래할 수 있죠?
"이 안에는 아주 희귀한 금속이 들어있어요. 이거라면 미고도 만족할 거예요."
어떤 금속인데요?
외계의 금속이라는 말에 애니는 열어봐도 되냐고 묻는다. 아스트리데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말한다.
"잠시 보는 거라면요."
살짝 열어서 안을 확인해보면, 검은 광택이 나는 금속이 있다. 잠시 특이한 점이 없다고 생각되엇지만, 안에서 금빛의 뾰족한 눈동자 같은 것이 깜박인다. 그것은 아름답고 불길한 빛을 내고 있다. 애니는 깜짝 놀라 작게 소리를 지른다.
이게 뭐죠...?! 눈동자 같은 게...
"괜찮나요? 진정해요..."
"살아 있는 건 아닐 거예요. 아마도..."
애니는 이 금속이 오브가 쓰던 상자와 비슷한 재질인지 떠올려본다. 로릭님은 표면은 비슷해보이기도 하지만, 저런 빛은 처음 본다고 했다.
난 이 금속에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추측했다. 여러 가지를 물은 것도 그 때문. 미고나 니알라토텝의 손에 들어가면 세계에 위해가 될 수 있어서 마지막 순간에 에른과 세계를 저울의 양 팔에 놓고 재야 하는 게 아닐까... 다행히 그렇게 가혹한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시나리오 상에서 금속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럼 무료한 남자는 어쩌죠? 그가 에른을 놔줄까요...?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존재지만... 거기에 있을지 없을지도, 알 수 없어요."
그를 속여서 빼내오는 건가요?
"속인다라... 그런 건 불가능할 걸요."
그럼 어떻게...?
"그가 흥미를 잃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죠."
그렇군요...
으아 설마 니알라토텝이랑 싸워야 하나...
아스트리데는 초점이 흐린 눈으로 애니를 바라본다.
리스크는... 어쩔 수 없겠죠.
좋아요. 준비됐어요.
"알겠어요. 그럼... 괜찮으시다면 저를 아디라고 불러주세요."
네. 아디.
애니는 아디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는다.
그리고 그 날 바로 출발. 총이고 뭐고 준비 하나도 안 했다. 어차피 사격도 기본치고! 공격 능력 죄다 기본치고!!
아디가 운전하는 차에 타고서 애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플레이어는... 에른 멱살이 너무 잡고 싶었습니다...
같은 날 오후, 연구소 잔해 근처.
시설이 폭파된 자리에 돌아가면 커다란 철제문이 보인다.
문에 다가가자 어쩐지 들어가기 싫은 듯한 기분이 마음을 잠식해오나, 애니는 이내 그러한 기분을 떨쳐낸다. 문에 손을 갖다대면 문이 열리고 어두운 계단이 나타난다.
"멍! 멍!"
애니는 하트를 돌아본다. 하트는 조금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다.
아디, 하트를 쓰다듬어줘도 될까요?
안내견 함부로 만지는 거 아니라고 배웠습니다.
"네, 괜찮아요."
"여기 걸린 주문 때문에 좀 불안한 모양이에요."
애니는 하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속삭인다. 괜찮아, 하트. 괜찮아. 하트는 금방 얌전해져서 꼬리를 흔든다.
...내려갈까요?
어두운 계단. 두 사람은 하트에게 안내를 맡기고 손을 잡고 내려가기로 한다. 애니는 아디의 손 근처에 손을 뻗어서, 아디가 자신의 손을 잡을 수 있게 한다.
이때부터 마스터 로릭님이 준비한 토큰과 맵과 다이나믹 라이팅이 진가를 발하기 시작. 토큰 주변만 볼 수 있어서 실제로 내가 그 공간을 움직이는 듯 했다. 평면도를 처음부터 보는 것보다 긴장감과 몰입감도 더했다.
내려가는 중, 애니는 계속 망설이던 질문을 입에 답는다.
...아디,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네. 뭔가요?"
제가... '애니'가 아닌 거, 알고 있어요?
애니지만... 애니가 아니에요.
"그건... 무슨 말인가요?"
아, 모르는구나...
아니, 아무 것도 아니에요.
긴 얘기는 나중에 해요.
내가 클론인 걸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너무나 괴로워하면서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었다. 인간 중에서는 나와 에른스트만 알 비밀. 에른스트가 살아있다면. 그리고 자신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면.
조용히 물었고, 아디는 모르고 있었다. 안도와 실망을 동시에 느꼈을 것 같았다. 안다고 했으면 뭐라고 할 생각이었을까. 지금의 내가 잊어버린 건지, 그때의 나도 궁금하고 답답한 마음에 일단 떠 본 건지 잘 모르겠다.
아디는 약간 불안한 듯한 표정이지만, 고개를 끄덕인다.
농담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중요한 건 아니니까.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요.
계단이 끝나고, 안에 발을 들이면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장난감 상자에 어서 오렴."
에른스트 쉴러의 목소리.
이 말을 하는 게 에른인지 니알라토텝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했든 얄미워서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에른 목소리를 흉내낸 니알라토텝이 아닐까 생각한다. 니알라토텝이 자신의 오래된 장난감인 에른과 새로운 장난감인 애니를 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리고 운+10으로 판정, 어려운 성공. 갑자기 하트가 애니의 옷자락을 물어 끌어당긴다. 복도 저만치에서 희끄무레한 형체가 보인다. 애니는 작게 비명을 지르며 쳐다본다. 여자아이. 원한에 가득한 얼굴을 하고, 내 쪽으로 다가온다. 가까이 다가오면... 마치 거울을 보는 기분이 든다. 이성 판정은 실패.
"이건...!"
애니는 잠시 당황했으나,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모습을 노려본다.
넌 뭐야?
물었으나, 대답은 필요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애니였다. 오리지널인지 무수한 클론들 중 하나인지는 (이 시점에서는) 모르지만, 언젠가 살아있었던 애니의 유령.
한 발의 탄환이 명중, 아니 통과한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치듯 사라진다. 돌아보면 아디가 44구경 매그넘을 천천히 내리고 있다.
"당신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네... 제 모습이었네요.
애니의... 모습...
아디는 축성된 탄환을 썼다고 설명했다. 유령에도 효과가 있는 줄은 방금 처음 알았다고. 애니는 많은 걸 설명하지 않는다. 그건 쉽게 털어놓을 수 없던 진실이었다. 애니는 유령이 나온 곳으로 가보자고 이끈다.
유령이 나온 곳으로 가볼까요?
저쪽 모퉁이...
원형이라 두 방향 중 어디부터 가는지는 플레이어의 선택이 될 텐데, 브레인맵핑실에서 니알라토텝을 먼저 만나는 게 플레이 흐름이 좋은 것 같다. 유령이 나온 곳을 보여주고 그쪽으로 유도하서 브레인 맵핑실을 처음으로 들어가게 한 건 로릭님의 유도였으려나. 홀로그램 --> 마법진 --> 연구자료 --> 클론배양실 순서로 갔고, 이 순서 정말 좋았다.
통로가 꺾어지는 곳에서 반쯤 몸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문이 하나 보이고, 유령은 보이지 않는다. 첫 번째로 마주한 문을 열어본다. 운 판정 실패.
손을 가져가면 문이 열리고, 갑자기 바닥이 흔들린다. 다행스럽게도 금방 가라앉는다. 난 이 흔들림이 운 판정 실패의 결과인 줄 알았으나, 판정 실패는 더 가혹한 형태로 애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면, 방 한가운데에 한 남자가 웅크려 흐느끼고 있다. 아까 그 유령인가 싶었지만 사람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는, 아름다운 남자가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 있다.
"여기는 내 장난감 상자야."
"가장 마음에 든 건 가장 부서지기 쉬운 곳에 뒀지."
"돌려받고 싶다면 재미있는 꼴을 보여줘!"
아름다운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선 자기 발밑에 꿈틀대는 그림자로 스며들듯 사라진다.
잠깐...!
여기서 이성 체크를 했는데 펌블... -6... 니알라토텝은 강했다... 시작부터 광기인가 싶었는데 지능 판정에 실패해서 다행히 광기는 면했다.
남자는 아직도 흐느끼고 있다. 애니는 가만히 다가가본다.
"...미안해... 미안해..."
에른... 이에요?
다가가면 이것은 에른스트 쉴러의 홀로그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애니는 떨리는 어깨를 향해 손을 뻗어보지만 그 손은 홀로그램을 통과해버린다.
"미안해... 애니..."
애니는 잠시 망연하게 홀로그램을 보고 있다.
...가요, 아디.
"...그래요..."
라고 말하며 가려고 했으나 아까 실패한 운 판정. 귓가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이... 가짜..."
...
"돌려줘..."
애니는 묵묵히 듣고 있다. 뒤에서는 철컥 하는 소리.
뭘 돌려달라는 거야?
싸늘하게 묻는다.
이쯤부터 슬슬 유령한테 화나기 시작했다. 돌려달라고 하는 걸로 봐선 클론이 아니라 오리지널의 유령인 것 같은데, 오리지널 유령이 지금 나한테 와서 몸 내놓으라고 질척거리고 있는 거야!? 야 너도 갑자기 살해당해서 억울한 건 알겠는데 누가 누구보고 가짜니 마니 하고 있냐?? 에른한테 따지든가 니알라토텝한테 따지든가 죽어서 같이 유령이 됐을 진리의 탐구자들한테 복수하든가 할것이지, 왜 또 다른 피해자인 나보고 돌려달래??? 나도 4개월 간 너무 힘들었고 심지어 인간으로서 죽을 수 있었던 너를 질투한 적도 있었는데 뭐 임마?????? 그래 나랑 싸우자 이자식아!!!
이런 생각과 함께 애니는 오리지널 애니의 유령에게 빡쳐서 쟤를 말로라도 꺾어버리고 싶다는 강렬한 투지에 휩싸인다. 그리고 이 분노는 잠시 후 쓸데없는 정신력 감소로 이어진다...
다시 한 번 총성이 울린다. "아악..." 그와 함께 그 기운은 사라진다.
"이제 괜찮아요."
그 유령들은 실제로 위해를 가할 수 있나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뭔가를 원하는 것 같아요."
다음엔... 위험하지 않을 것 같다면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알겠어요."
(중얼) 그들도 아마 애니일 테니까...
아직 하나인지 여럿인지 알 수 없어서 그들이라고 한다. 설득은 생각 없고 한 방 먹이고 싶어서 대화할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는데... 잠시 후 아까운 정신력을 낭비하는 결과가.
애니는 다시 아디의 손을 잡고 복도로 나가 앞으로 간다. 스위치 얘기가 왜 안 나오냐면, 곧 밝혀집니다... 일단 나가고, 다음 문이 나오고, 문을 여는 애니. 운의 절반으로 한 판정은 다시 실패. 나 왜 행운 이따위ㅠㅠ
문에 들어서자 다시 한 번, 아까보다 심하게 바닥이 흔들린다. 눈앞에는 들큰하고 역한 냄새가 진동하고, 벽에는 온갖 붉은 글씨가 가득하며, 그 가운데 방금 쫓아버렸던... 그 형체가, 애니가 가만히 서서 애니를 노려보고 있다.
가까이 오지 마.
할 얘기 있으면 해봐. 더 오면 쏠 거야.
쏘는 건 아디지만. 애니는 팔을 뻗어 아디에게 아직 쏘지 말라고 신호한다.
"왜?"
"내 몸을 돌려줘."
넌 뭐야?
애니는 냉정하게 묻는다.
"내가 진짜야."
진짜라고?
애니는 차갑게 내뱉는다. 비웃듯이. 진짜라니,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해? 무수히 많은 클론들이 있었고, 무수히 많은 클론들이 죽어갔는데, 이제 와서 진짜라는 게 그렇게 특별해?
...라고 따지고 싶었으나,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나에게 휙 하고 날아든다. (야 사람 말 좀 들어 아오 답답해)
정신력 대항 판정에서 진 애니. 애니는 그녀의 집념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의지를 빨아올리는 듯한 느낌이 들고... 애니는 10의 정신력을 잃는다. 애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본 아디는 총을 발사하고, 명중한다.
허억...!
그것은 물러났지만, 여전히 의지를 빼앗기는 듯한 느낌은 남아있다.
그녀에게서 악의가 느껴지냐고 묻자, 로릭님은 증오심과 슬픔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아니 얜 왜 날 증오하지... 난 에른을 애증하는데 얘는 날 증오한다니 도대체 뭘 어떡해야 하나... 얜 왜 에른을 증오하지 않고 나한테 와서 이러나...? 에른 안 밉니?? 내 몸 뺏어서 에른 멱살 잡으려는 거면 인정하겠지만 (??
네 사실 이 플레이 중에 절 가장 강하게 사로잡았던 감정은 오리지널 애니(유령)에 대한 빡침이었습니다... 에른 구출은 뒷전이고 정체성 싸움이 되어버림... 하지만 그게 애니에게 더 어울린다.
고마워요... 제가 너무 안이했나봐요.
"아녜요.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어요."
증오심과 슬픔이 느껴져요... 대화는... 힘들겠네요.
아디는 고개를 끄덕인다. 총 쏠 기회가 있었는데 내 고집으로 정신력만 깎아먹은 게 아쉬웠다. 유령과 대화할 수 있을 줄 알았고, 정말 대화하고 싶었는데... 5년 동안 성급해져버린 애니 유령...
"그보다 저건... 아무리 봐도 마법진이네요."
마법진을 관찰한다. 애니는 이 냄새는 피와 시체가 썩고 썩어 무저갱을 만든 듯한 냄새임을 알 수 있고, 마법진 가운데에 스위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니는 구역질을 참으며 스위치를 들여다본다. 스위치는 아무런 설명이 붙어있지 않은 검은 색 스위치.
"이건 그와 접촉하기 위한 마법진이예요..."
무료한 남자와요...?
"네..."
"이 마법진에 들어가는 건 꽤 괴로울 거예요..."
그렇다 나는 이 방에서 스위치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홀로그램 있는 방에서 각오를 다지는 알피만 하고 관찰을 안 한 탓에 스위치를 못 발견했기 때문이지! 피로 그린 듯한 마법진 안에 스위치가 있고, 니알라토텝을 부르는 마법진이라는데 '우왕 들어가서 눌러봐야징!!'하기가 찜찜했다.
애니는 잠시 망설인다.
"혹시 저 스위치를 누르는 거라면 제가 들어가는 게 좋겠어요."
네? 왜요?!
너무 위험해요.
"저는 이미 크툴루 신화에 대해서 잘 아니까요."
으음 아디가 이런 말 하니까 정말 최종 관문 같잖아...! 이렇게 오해를 한 나는 일단 스위치를 누르지 말자고 한다.
지금은 그를 불러도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조금만 더 둘러보면 어때요?
그는 재밌는 걸 보여달라고 했으니까... 분명 무슨 의도가 있을 거예요.
이렇게 말하자 아디는 그를 부르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말해둔다. 이렇게 피가 흐를 만큼의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그는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그러니 저 스위치는 다른 용도일 거라고 말한다.
그렇군요... 그래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다른 방을 좀 더 둘러보는 게 어때요?
"그래요. 혹시 당신이 저기에 들어가려고 할까봐 한 말이었어요."
아녜요. 정체도 모르는 스위치를 막 누를 순 없죠.
에른을 만나서...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미소)
나가요.
네... 이따 나오겠지만 전 이 원형 복도를 두 번 돌았습니다...
복도 쪽으로 빼꼼 머리를 내밀어보면, 복도는 여전히 조용하다. 이쯤에서 복도가 원형인 걸 깨달았다. 다이나믹 라이팅 멋져!
지금까지 방문 앞에서의 행운 판정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무려 극단적 난이도. 당연히 실패. 죽으러 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문이 열리자 갑자기 하트가 짖는다. 안쪽은 연구자료들이 마구 널려 있고, 바닥이 심하게 흔들려서 그나마도 다 쏟아진다.
그리고 다시 애니의 모습이 보인다.
넌 애니가 아냐!! 나처럼!!
애니는 순간 울컥해서 소리친다.
"내가 원본이야! 내가 진짜란 말이야!"
그 비명같은 목소리는 총성에 묻힌다.
아디... 고마워요...
그 총... 탄환은 얼마나 남았어요?
"총 안에는 두 발, 하지만 여섯 발 더 있어요."
아디 멋져!! 든든해!!
너무 많이 끌지 않아야 할 텐데...
그나저나 여긴 뭐죠...?
책이나 서류들이 다 쏟아져 있지만, 연구실 같은 방. 가까이에 떨어진 책을 집오보자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여 있다. 이때 하트 토큰이 막 돌아다녀서 귀여웠음ㅋㅋㅋ
워낙 어질러져 있어서 뭔가를 찾으려면 관찰력의 어려운 난이도로 판정. 애니는 뭔가를 찾는 데 실패했지만, 하트가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더니 서류더미를 헤집는다. 그 아래에서는 아까와 똑같이 생긴 검은 스위치가 나온다. 하트는 양피지 조각을 물고 애니에게 돌아온다.
"헥헥"
하트 귀여워!!!!!!!!!!!!
하트, 이게 뭐야? 애니는 그 조각을 받아서 읽어본다. '단단히 감싸는 것'의 주문.
"같은... 스위치..."
아직까지 스위치를 하나도 안 누른 나에게 주는 로릭님의 힌트였던 것 같다.
애니는 정신없이 주문을 읽다가 퍼뜩 고개를 든다.
아...
그러네요. 첫 번째 방에도 혹시 있었을까요?
왜 알피만 하고 관찰을 안 했을까... 이왕 이렇게 된 거 한 바퀴 빙 돌고 처음부터 다시 누르기로 결심했다. 누르는 순서가 중요할지도 모르고.
일단 다음 방에 먼저 가보고, 첫번째 방도 다시 가볼까요?
다음 방. 이젠 문 열기 전에 심호흡부터 한다. 이번에도 역시 실패... 이쯤 되면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난 오리지널 애니의 유령을 만나는 이벤트에 다 걸리고 넘어갔다! 그래 역시 이건 오리지널이랑 싸우라는 다이스의 뜻이야...
애니가 문을 열려는 찰나, 한기가 느껴진다. 회피라도 하고 싶었으나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피하는 게 불가능. 판정에서 진다. 정신력이 단번에 13이 깎인다...
그러고 나면 한기가 몸 안에 남고, 그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이 자식이 이제 말도 안 하고 가버리네?! 야 정신력을 깎아놨으면 나한테도 한 마디 할 기회는 줘야지!! 라며 혼자 분노했다.
"미안해요, 미처 반응하지 못했어요."
아디 잘못이 아니에요... 난 그냥 쟤한테 한 마디 쏘아붙여서 멘탈 무너뜨리지 못한 게 화나...
그리고 서 있기 어려울 정도로 바닥이 마구 흔들린다. 점점 심해지는 느낌이다. 이제 익숙해 이 패턴...
방을 둘러본다. 이 방은 푸른 빛이 감도는 선반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마치 태아의 배아 단계를 순서대로 보여주려는 듯, 다양한 시기의 태아들이 무수한 배양관 속에 들어있다.
이건...?!
"무슨 연구를..."
설마...
애니는 이게 에른의 클론 연구인가 생각하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럼 애니는 그 모든 태아들의 심장이 멈춘 상태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두 손을 꼭 쥐고 검지만 펴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도. 그 방향을 눈으로 따라가자, 거기엔 빈 배양관이 있다. 다가가면 그 안에 들어 있는 스위치가 보인다. 검은 스위치.
스위치...
누를 수밖에 없겠네요, 이제...
순서는 포기했다. 아디는 고개를 끄덕이고, 애니는 눈앞의 스위치를 누른다.
그 순간 모든 배양관에서 어떤 사념이 애니를 압도한다. 사랑, 원망, 그리움, 공포... 단 한 사람, 에른을 향한 강렬한 사념. '애니'의 사념. 그것이 직접 뇌를 건드린다. 두 사람 다 이성 상실량은 없었다. 다이스의 결과이지만 이야기에 맞게 해석하면, 아디는 클론 연구에 대해 모르고 있기 때문이고, 애니는 이미 본인이 너무나 잘 아는, 4개월 동안 너무나 강렬하게 느껴 온 감정이기 때문이 아닐까. 다른 클론들도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꼈을 거라는, 너무 당연한 사실에 대한 확인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조금 안도하지 않았을까. 나만 그랬던 건 아니구나...
방 안 쪽의 문에서 무언가 둔탁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다가가서 귀를 기울여본다. 듣기 판정 실패, 강행에서 펌블. 주사위 나한테 왜 그래요...? 바닥이 마구 흔들려서 애니는 미처 균형을 잡지 못하고 넘어져서 멍이 든다.
"괜찮아요?"
아뇨... 정신력은 이미 너덜너덜한데 체력도 잃은 애니... 지금 정신력은 32.
그 문은 아무런 고리나 장치도 없어 보이고, 열려고 시도해도 열리지 않는다.
다른 방의 스위치를 눌러보죠.
토큰을 옮겨서 첫 번째 들어갔던 홀로그램 방으로.
여전히 울고 있는 에른의 홀로그램이 있다.
...에른.
"애니... 미안해..."
홀로그램 근처에 스위치가 있나 확인해보자, 홀로그램이 짚고 있는 손 아래에 검은 스위치가 보인다. 누르면 가운데 쪽에서 소리가 나지만 문은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홀로그램은 사라진다.
통로는 원형이고 가운데에 뭐가 있는 것 같네요. 저 문들...
일단 다 눌러봐요. 나머지 두 개도.
애니는 잠깐 홀로그램이 있던 자리를 바라본다.
"그렇게 해요."
마법진이 그려진 방에 다시 들어가지만, 이 방이 가장 위험한 것 같아서 다른 방 먼저 누르는 게 어떨까 싶었다. 나중에 보니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잠깐, 아디, 이게 가장 위험해보인다면 다른 방의 스위치를 먼저 눌러볼까요?
스위치는 하나 더 있으니까요.
아디 손을 잡고 연구실로 가서 스위치를 누른다. 안쪽에서 다시 장치가 움직이는 소리. 나가서 다시 마법진이 그려진 방으로.
아디의 손을 꽉 잡는다.
...부탁해요, 아디.
눌러준다길래 거절은 안 했다. 오히려 눌러달라고 로릭한테 상기시킴. 강하게 얘기하길래 애니가 하는 것보다 아디가 하는 게 성공확률이 더 높다거나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네, 잠시만 기다려요."
마법진 안으로 들어간 아디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며 몸을 떤다. 애니는 마법진 밖에서 몸을 낮춰 하트를 끌어안는다.
쉿, 하트... 괜찮아...
"멍!"
내가 이 세션에서 가장 많이 소통하고 교감한 npc는 하트였던 것 같다. 하트 너무 귀여워ㅠㅠㅠㅠ 귀엽고 듬직해 멋져ㅠㅠㅠㅠㅠㅠ
"아아..."
아디...?
그녀는 손을 뻗어 스위치를 누른다.
괜찮아요?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린다.
"네..."
뭘 본 거예요...?
"무료한 남자의 목소리..."
"꿈틀대는 모독적인 것."
"이젠 괜찮아요."
순간 그 환각을 상상해버린 애니는 몸을 바르르 떤다.
들어... 갈까요?
"네."
가운데에 숨겨져있던 방. 원형 지하실의 정가운데. 장난감 상자의 한복판.
사방에 알 수 없는 기계들이 들어차있고, 지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들린다. 가운데에 있는 것은 금속의 보관통과 생체 캡슐.
가까이 다가가보면, 금속의 보관통에는
Resit In Fear
Resist In Fear
Ernst Schiller
라고 적혀 있다. 각운 멋져...
에른...
뇌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통. 이성 상실은 없다. 애니는 짐작하고 있었다. 에른스트의 뇌를 이미 직접 보았으니까.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생체 캡슐. 그 안에 들어 있는 몸과 얼굴이 그대로 보인다. 얼굴은 허물어졌다가 회복되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성 판정. 1의 이성을 잃는다. 이미 그런 광경을 본 적 있지만, 에른이라는 걸 알고 보는 것은 역시 좀 다르다.
그리고 그걸 확인한 순간, 서 있는 것이 고작일 정도로 격렬한 지진이 일어난다.
난 아디의 손을 잡고 바닥에 주저앉아서 아디와 하트를 끌어안는다고 선언했다. 지진이니까 넘어지지 않게. 하지만 지진이 문제가 아니었다. 위에서부터 굉음이 들리면서 낙석이 떨어진다. 낙석이 노리는 건... 애니. 피해야 할 것 같은데 이미 앉아버렸네 어쩌지 하고 있는 순간, 하트가 애니를 거세게 밀친다. 다행히 하트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고, 애니도 무사하다.
하트!!
"멍!!"
하트... 미안해... 하트...
애니는 하트를 꼭 끌어안는다. 여진이 계속된다. 허공에 대고 "원하는 게 뭐야!!"라고 외쳐 보지만 답은 없고, 곧 낙석이 더 떨어질 것 같다. 난 주문의 존재를 깜빡하고 있었다.
"이래서는..."
"미고를 부르는 주문을 외울 수가 없어요, 이래서는..."
더 떨어지기 전에 캡슐을 열어서 몸을 꺼낼까 싶었으나 캡슐은 뇌 없이 몸의 생명을 붙여놓는 역할. 열면 에른은 죽을 것이다. 이쯤에서 주문의 존재를 기억해냈다.
그 주문...!!! 제가 해볼게요!!
"무슨 주문이요?"
보호막을 치는 주문이요!
마력 1만 넣는다고 하고 정신력의 어려운 난이도로 판정. 성공 수준 16... 가능성이 너무 낮아서 마력을 많이 넣을 수가 없었다. 강행 실패시의 페널티 때문에. 그리고 역시나 실패. 강행은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포기. 이성 1d10을 잃는데 10이 떴다. 진짜 나한테 왜이래ㅠㅠ 그나마 지능 판정도 실패. 지능 80인데 다 실패중.
방에서 잠깐 나갔다 돌아오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다시 이 방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그때 보관통과 캡슐이 무사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해서 이것도 포기.
아디, 이 상태로는 미고를 부를 수 없는 거예요?!
"불가능해요, 부르는 동안...!"
그때 아까보다 더 심한 낙석이 떨어진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낙석 세 개 중 아디에게 두 개, 애니에게 한 개가 떨어진다.
로릭님은 잠깐 하트의 입장에서 생각 좀 하겠다고 말했다. 하트에게 이입해서 하트의 행동을 결정하는 마스터님 오오오... 멋진데 뭔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하트의 입장!! 그리고 역시나 안이한 생각이었음이 바로 잠시 후에 밝혀졌다...
아디는 권총으로 낙석을 격추하려 한다. 운 좋게 하나가 명중하지만, 다른 하나는 여전히 애니를 향해 떨어지고 있다. 하트는 아디에게 달려들어 아디가 운석에 맞지 않게 밀쳐낸다. 애니는 낙석이 떨어지는 궤도에서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피하고 바닥에 구른다. 이것이 흉가체험을 통해 체득한 회피 능력의 효과!
애니가 '그렇게 멋지게 피해내는 동안', 하트는 다시 한 번 몸을 날려서 아디를 밀쳐낸다. 하트는 아디를 구하고 돌에 깔려서 낑낑거리며 신음한다. 이때가 플레이 중 제일 멘붕이었다ㅠㅠㅠㅠ 하트ㅠㅠㅠㅠㅠㅠㅠㅠ
하트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지만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일단 더 낙석에 맞지 않게 주문 강행을 하려 했는데 지진이 진정되기 시작한다. 로릭님은 후담에서 원래 여기에 들어가는 누군가의 섬뜩하고 모독적인 웃음소리와 박수소리를 깜빡했다고 말했다. 하트를 돌보느라 정신없어서 못 들은 걸로.
하트!!
"하트!"
애니는 정신없이 돌을 치운다. 하트가 피투성이가 될 채로 괴롭게 숨쉬고 있다.
응급처치를 시도했으나 실패.
"하트, 하트..."
강행한다.
조금만 참아, 하트...
다행히 강행에는 성공. 하트는 고통이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정말 다행이야ㅠㅠㅠ
하트...
"고마워요..."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니에요... 하트에게 미안해할 건 저겠죠."
지진이 멎었을 때 빨리 주문을 외울 수 있나요...?
"네, 해볼게요."
그녀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몇 분간 주문을 외운 그녀는 눈을 뜨고, 그러자 저 앞쪽에 분홍빛의 벌레 같은 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애니는 헉 하고 숨을 들이쉰다. 피막 같은 날개와 촉수 같은 입. 불쾌한 냄새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지성을 가진 존재. 이성은 4 상실. 전작과 달리 광기를 아슬아슬 잘 피해가는 중...
"왜 나를 부르는 것이냐?"
미고는 날카로운 쇳소리로 말한다. 애니는 에른스트 쉴러를 돌려받고 싶어요, 라고 침착하게 답한다. "대가는?" 그렇게 묻는 그것은 무척 즐거워 보인다.
"이거라면 되겠죠."
아디는 손 위의 꾸러미를 풀어 금속을 보여준다. 미고는 촉수를 길게 뻗어 금속을 어루만지더니, '웃는다'. 촉수 같은 입을 어떻게 움직이면 웃는 모습이 될지 궁금. 사실 플레이어인 나는 이쯤에서 매우 지쳐 있었다.
"너희 인간들은 그분 말씀대로..."
"가지고 놀수록 흥미로운 것을 가져오는구나."
뭔데?! 뭐였는데??? 아 궁금하게... 난 정말로 세계나 국가, 못 해도 도시 레벨 재해와 에른 간에 선택을 해야 할 줄 알았다. 금속은 뭐였을까. 에른보다 흥미로운 것인 건 분명한데 어째 영 불안. 저들이 좋아하는 게 과연 인간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불안하지만 미고는 이미 금속을 잡아채어 가져갔다. 어쩔 수 없지. 인류여 미안. 그리고 다른 촉수로 뇌 보관통을 열어 뇌를 꺼내고, 생체캡슐을 열어 그 머릿속에 일종의 수술을 한다. 일련의 과정은 너무 빨라서 마치 찰나처럼 느껴진다. 애니는 그걸 보면서 저것의 역의 과정으로 미고가 '자신'의 뇌를 꺼냈을 거라는 걸 떠올린다.
얼굴의 피부를 어루만지며 수복과정을 마친 미고는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미고가 자신의 뇌를 꺼내는 장면을 생생하게 떠올려버린 애니는 그 생각에 몸을 떨며 잠시 서있다가 캡슐로 다가간다. 캡슐 발치쯤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인공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액체가 빠져 있다. 이제 에른스트의 얼굴이 잘 보인다. 정신을 잃고 있는 것 같다.
...에른.
속삭이듯이 불러보지만, 반응은 없다. 아무래도 쇠약해져 있을 거라고 로릭님이 설명했다. 다시 바닥이 흔들리고 있다. 애니는 아디의 도움을 받아 에른을 일으키고, 양팔을 어깨에 둘러서 끌고 방을 나간다.
"하트도...!"
애니는 하트도 어떻게든 안는다. 에른 일어나서 자기 발로 좀 걸어... 크기45 근력55인 애니가 성인 남성 들쳐업고 하트 안고 계단을 올라야겠냐...
후담에서 로릭님은 오리지널 애니의 유령이 마지막으로 나오는 장면을 깜빡했다고 했다. 하지만 있었던 셈 치고 끼워넣어야지. 에른을 돌려받게 된 애니의 옆에 나타난 '애니'는,
"에른을 잘 부탁해, 애니..."
입술을 깨물면서 애써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에른을 애니에게 맡기며 사라진다.
...안녕, 애니.
마지막 가는 길인 것 같고 나도 너무 지쳐서 뭐라 말은 안 했을 것 같지만, 사실 난 '잘 부탁하긴 뭘 잘 부탁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가 나는 질투하고 에른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알겠는데 그걸 우리 애니한테 강요하지 마라... 그래서 끝까지 긍정적인 대답은 안 함. 안녕이라고는 했지만 좀 덜 지쳤거나 좀 더 화났으면 '그래 내가 애니다, 나랑 에른한테 상관 말고 성불이나 해 이 유령아' 같은 대답을 하지 않았을까... 아련함 파괴...
그럼 이제 다시 플레이 중의 이야기. 그렇게 이고 지고 하트와 에른을 데리고 밖으로 나오면, 벙커는 무너진다. 에른을 일단 땅에 내려놓고 다시 일어서서 무너지는 벙커를 잠시 바라보는데,
"으음..."
익숙한 목소리. 애니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경직된다.
돌아보지 않고 가만히 서 있다.
아까도 썼지만 난 정말 정말 많이 지쳐있었다. 플레이타임이 생각보다 길어졌고(텍스트인데다가 내가 두 바퀴 돈 탓인 것 같다), 긴장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다 보니 더 힘들었던 듯.
"에른!"
애니는 여전히 가만히 서있는다. 돌아보지 않는다.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혼란스럽다.
"..."
"...고마워..."
할 말이 많았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났다. 플레이어가. 그리고 애니도.
애니는 몸을 돌려서 에른을 쳐다본다. 에른은 울 것 같은, 복잡한 표정이다.
에른...
...난 고맙다고 안 할 거예요. 하나도 안 고마워.
살려달라고 부탁한 적 없어요. 이렇게 되길 바란 적도 없었어.
하지만 아무리 지치고 힘들었어도 이대로 일단 다 덮어둔 채 포옹하고 토닥토닥 하고 끝내긴 싫었다. 그러기엔 내 애증이 깊다... 그래서 쏘아붙여 봤지만 사춘기 청소년의 반향 같은 말이 되어서 스스로 불만이었다. 애니도 그랬을거야.
"다행이야. 내 꿈이나 상상이 아니구나."
"이기적으로 굴어서 미안해."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거 왜 이렇게 얄밉지. 좀 더 사과해라...
꿈도 상상도 아니에요. 난 애니지만 애니가 아니고...
당신의 애니는 이제 어디에도 없어요.
나의 에른이 어디에도 없는 것처럼.
에른은 씁쓸하게 웃는다. 애니는 다시 에른을 예전처럼 생각하지는 못 할 것이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너무 깊은 감정이 있었다. 낫지고 않고 지울 수도 덮을 수도 없는 상처가 있을 것이다. 애니에게도, 에른에게도. 애니의 에른은 수없이 많은 '애니'의 시체과 함께 그 연구소에서 죽었고, 에른의 애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왜 그랬어요...?
애니의 뺨을 타고 눈물이 주륵 흐른다. 가슴 속에 무언가가 잔뜩 엉켜 있는데 토해낼 수도 없었다.
왜 그랬어요? 나한테 왜 그랬어? 이렇게 될 걸 생각 못 했어요? 내가 원망할 거란 생각을? 인간도 아니고 진짜도 아닌 삶을, 그렇게 기를 쓰고 이어놔야 했어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가 죽었는데도?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지킬 수도 없었어."
"무엇이 옳은지도, 내가 제정신인지도 알 수 없었어. 하긴 예전부터 난 늘 그랬지..."
로릭님 이 알피 너무 좋았어ㅠㅠㅠ 얽히고설킨 복잡한 감정을 알피로 받아달라고 해서 미안했다. 하지만 정말 멋지게 답해준 로릭님ㅠㅠㅠㅠ
애니에겐 항상 에른이 커 보였을 것이다. 뭐든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겠지. 어른이니까. 아버지니까. 하지만 에른도 아직 젊고, 큰 정신적 충격 앞에서 무너져버려 마지막 가능성에 매달렸을 것이다. 잘 이해되지 않는 자기만의 기준에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로릭님이 트윗에서 에른의 행동이 잘 이해되지 않지만, 그 자신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썼던 것 같다. 난 그 말이 정말 좋았다.
...이상한 데서 덜렁대는 건 내가 아는 에른 맞네...
진짜도 아니고 가짜도 아니네요. 우리 둘 다...
에른이 저러고 있는 걸 보니 날카롭던 원망이 조금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정말 너무 지쳐서 머리가 아팠기도 했고. 애니도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내 긴장하고 정신력도 뺏기고, 니알라토텝도 의식하고 오리지널 애니의 유령과도 싸우고 했는데 지치지 않을 리가. 원망의 말을 가득 담아 왔지만, 구해내고 나니 아무 생각도 안 들어서 다 말하지 못했을 것 같다.
"맞아. 그렇지."
여기서 애니를 안 달래주는 건 좋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다. 하지만 에른 입장에서도, 죽음을 생각하고(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제 발로 들어온 관 같은 지하 벙커에서 억지로 그를 꺼내 온 애니가 어쩌면 원망스러울지도 모르지. 진짜도 가짜도 아닌 삶을 더 유지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거니까. 그로서는 절대 거절하지 못할 요구. 둘이 은근히 닮았어...
돌아가요, 에른.
아빠...
같이 돌아가요. 길었네요. 아무튼 지금은 함께, 집으로. 진짜든 가짜든 간에, 이 순간 우리는 살아있으니까.
"그래... 우리 집으로, 돌아가자."
여기서부턴 에필로그.
애니는 일단 집으로 돌아간다. 쇠약해진 에른을 간호하고, 아디랑 하트도 간호한다. 하트는 심하게 다쳤지만 그래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회복될 수 있었다. 그때까진 애니가 아디를 많이 도왔겠지. 하트 다시 건강해질 수 있어서 다행이야ㅠㅠㅠㅠㅠ
에른이 거의 다 회복되면 애니는 여행을 떠난다고 내가 말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겠지만, 아무튼 긴 여행을 떠날 거라고.
정말로 마지막. 이하는 로릭님이 묘사한 에필로그. 애니는 긴 여행을 떠나고, 에른은 애니가 원하는 대로 준비를 도와준다. 그런데 무료한 남자는 여전히 에른을 무척 총애하는 것 같다. (나: ???!?!?!) 종종 주변에서 불온한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 어쩌면 그렇게 평온하지는 않을지도 모른 일상이지만... 애니는 가끔이라도, 집으로 돌아오겠지. 그리고 그는 "잘 다녀왔어." 라는 말로 맞아 줄 것이다.
흑흑 로릭님ㅠㅠㅠㅠ 긴 여행에서 가끔 집으로 돌아오면 잘 다녀왔냐며 맞아준다니ㅠㅠㅠㅠㅠ 아 너무 멋지고 애니의 이야기의 결말로 완벽하다... 이전과 같을 순 없을 일상. 되찾지 못하고 멀어져버리겠지만 또 새롭게 일상을 만들어 나가겠지...
할 말 진짜 많았는데 너무 지쳐서 생각이 안 났다. 애니도 그랬을테니 뭐...
사실 이런 결말은 미리 상상하진 못했다. 좀 더 극단적으로 나가려 했으니까. 이렇게 완전히 잘라버리지도 다 용서하지도 못한 채 애매한 상태가 될 줄은. 하지만 괜찮아 이게 훨씬 현실적이어서 좋았고, 가족은 떨어져 살면서 가끔 만나야 사이가 좋댔어...
오리지널 애니의 유령이랑은 얘기 좀 해보고 싶었는데 공격만 해서 짜증났는데, 원래는 대사도 없다고.
독립시켜주고 싶었으나 역시 상황은 전혀 내 예상대로 흐르지 않았다. 오브 구하려다 죽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지만 그걸 오브가 눈앞에서 목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기에... 그냥 개죽음이잖아... 아디가 살아남으면 말해주려나.
아무튼 구해냈다!! 희생자도 없이!! 살아 있으면 멱살 잡을 기회 한 번쯤은 오겠지!! 그러니 괜찮아!
이렇게 멀리있는당신에게 후기도 끝. 정말 본격적인 로그 정리 후기가 되었다. 그 후의 이야기나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 복잡한 감정들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포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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