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여기까지 후기 차례가 왔다! 블로그를 파고 후기를 써서 올릴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세션이었다. 리플레이나 자세한 후기를 참고하고 싶은데 한국어로 된 건 결국 못 찾았던 경험 때문에, 세션을 준비하면서 후기를 찾아볼 마스터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했던 마스터링. 플레이어보다 룰을 잘 모르는 마스터였다. 전투가 안 나와서 다행.
이것도 아련함과 긴장감, 애절함, 그리고 거기서 오는 광기를 표현할 수 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되지만... 난 그 분위기를 살리지 못했다...
2차탁이나 자캐-앤캐로 플레이하는 걸 추천하고 싶다. 자세한 건 아래에서.
NPC는 이세은. 여자, 대학원생, 29세. PC는 차도연. 여자, 카페 주인. 이세윤이 차도연 가게의 단골 손님이어서 자주 보다가 친해진 사이.
[시나리오에 대해]
드라마 위주의 시나리오라 생각한다. 자유도가 매우 높은 시나리오이고 특정 장소 외의 다른 장소에서 할 만한 것도 별로 없다. 시나리오 읽고서 마스터는 과연 뭘 해야 하는건지 고민을 많이 했다. NPC가 무조건 죽어야 하니 PC가 NPC 대신 죽는 것 외에 다른 걸 하기가 힘들고, 그러다보니 판정도 잘 안 하게 되었다. 캐이입을 강하게 해서 이성 깎이는 RP나 광기RP 등등을 몰입해서 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죽음이 10번 반복되는 게 시간제한인데 너무 긴 느낌. 빨리 찾으면 도서관-->교회-->전망대로 끝나버린다. 10회로 한 건 알피를 다양하게 하라는 의도인 것 같은데 그래도 역시 좀 많다. 다만 탐사자가 여럿이라면 서로 의견이 안 맞을 경우 조사를 속행하지 못하고 1시간이 돌아와서 자주 죽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조사가 지지부진하게 끝나서 빨리빨리 죽으면 그건 그것대로 지루할 것 같다.
그리고 교회를 간 뒤에 경찰서를 갈 일이 있나? 교단 이름을 대면 죽는다는 설정이 큰 의미가 있을까 싶다.
가장 불만이었던 건 뭘 할 여지가 없다는 점. 도서관만 가면 교회로 연결되긴 하지만 반대로 도서관에 안 가면 딴 데 가봤자 아무 정보도 못 얻는다. 그냥 우왕좌왕하다가 1시간 지나서 죽을 뿐. 알피 중심의 이야기긴 하지만, 알피를 빼면 남는 게 있나 싶었다. PC가 NPC를 죽이는 방향으로 가서 모두의 멘탈을 파괴하는 선지도 있긴 하지만...
플레이어를 유도할 유인이 없다는 점도 힘들었다.
[세션의 흐름]
(1) 카페를 마감하고 집에 와 잠이 든 도연은 이상한 꿈을 꾸고, 1시간 정도 떨어진(설정 오류가 났지만..) 곳에서 눈을 뜬다. 단골손님 이세은과 함께. 돈도 없고 카드도 없지만 일단 택시를 타고 도착해서 지불하기로 결정. 횡단보도를 건너가는데, 눈앞에서 이세은이 굉장한 속도로 돌진하는 트럭에 치여 즉사한다. 이성 체크 후 의식을 잃는 도연.
(2) 눈을 뜨면 아까와 똑같은 광경이 펼쳐진다. 서초구, 한낮의 도시, 파랗게 질린 이세은. 번득이는 듯한, 이상한 색의 하늘.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지만, 집 근처에서 위에서 떨어지는 화분에 머리를 맞아 다시 즉사하는 이세은.
(3) 다시 또 반복.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길래 아이디어 판정으로 자료조사를 권했다. 도서관으로 이동. 오컬트나 종교 서적 등을 뒤진다. 자료조사 판정 실패, 강행 실패로 1시간이 지났다고 판단, 육중한 책상이 쓰러져 이세은을 덮친다고 했다.
(4) 이번엔 바로 도서관으로. 시간과 공간을 숭배하는 종교단체에 대해 알게 된다. 도서관을 나와서 교회까지 걸어가는 중에 이세은 발밑의 도로에 균열이 생긴다. 푹 꺼지는 땅으로 떨어져서 사망. 싱크홀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5) 바로 교회로. 교회에서 알 게 많아서 중간에 한 번 죽일까 하다가 지루해질 것 같아서 관뒀다. 주문을 얻었는데, 전망대 안 올라가고 예배당 안에서 바로 주문 사용한다고 해서 당황. 확률이 너무 낮은데... 그러다 주문에 '매개'가 있다며 소환에 사용한 매개를 중심으로 시전해야 한다고 하고, 그러니 전망대로 가자고 유도. 유도라기엔 억지에 가까웠던 것 같다. 성공확률은 알려줬으니 그냥 플레이어 판단에 맡길 걸 그랬나 싶기도. 그리고 뒤에서 교인이 나타나서 이세은을 총으로 쏜다.
(6) 전망대. 주문을 외우고, 성공. 눈을 뜨면 그곳은 어제 잠들었던 침대 안. 무사생환 해피엔딩!!
[마스터링에서 아쉬웠던 점]
1.
이 시나리오의 분위기를 못 살린 가장 큰 이유는 플레이어가 NPC와의 친밀한 관계를 실감하지 못한 것이라는 피드백을 받았고, 동의했다. 한 사람이 반복해서 죽고 그걸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 큰 줄기인데, 그런 절박함과 간절함을 살리려면 애초에 PC들과 NPC가 매우 친밀한 사이인 게 좋다.
세션에서도 둘이 친한 사이라고 설정하긴 했는데, 캐릭터 짜면서 '둘은 친한 사이입니다'라고 한 마디로 정하고 들어갔을 뿐이라 어느 쪽도 친밀감을 실감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백스토리 설정을 더 자세하게 하거나, 2차탁이나 자컾으로 플레이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또 돌린다면 2차탁으로 해보고 싶은 시나리오.
2.
사는 곳이 관악구인데 눈을 뜬 장소가 서초구라고 설정... 이것도 몰입을 방해했던 요소였을 것 같다. 서초구에서 관악구까지 걸어서 1시간이라고...? 내 마음속 지도의 축척 어떻게 되어먹은거지.
3.
채팅 로그를 다시 읽어보니 묘사가 약하고 진행이 뚝뚝 끊기는 감이 있었다. 의식을 잃을 때의 묘사나, 죽는 장면 묘사 등. 진행에서는 판정 실패시 정보를 하나도 안 줬는데, 반복되면 플레이가 지루해질 것 같다. 너무 단정적인 마스터 개입도 문제였다.
4.
시작하자마자 에러플이 있었는데, 최초로 눈을 뜬 후 1시간이 지나기 전에 NPC를 죽여버린 것. PC가 일단 택시를 타고(생각해보면 택시는 후불이었다. 막을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집까지 간 다음에 돈을 주자고 해서, 택시를 잡으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NPC를 죽였다. 그때는 당황해서 일단 빨리 죽여버리자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대처할 방법은 많았다. 일단 택시에 태운 다음에 길이 막혀서 집까지 가는 데 1시간쯤 걸렸다고 하거나, 택시가 안 잡히거나 목적지까지 안 가겠다고 승차거부를 하는 등. 플레이어는 택시를 일단 탔다가 차가 고장났다고 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마스터로서의 감상]
가장 걱정한 건 역시 '지금 플레이어가 재미없어하는 건 아닐까'였다. 채팅 세션이라 반응 파악이 안 되기도 하고, 후반부에 어차피 못 구하는 거 아니냐는 말을 들으니 더 신경쓰이기도 하고. 알피가 메인이 되는 시나리오를 탐사 중심으로 진행하려 한 게 가장 큰 실패요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거 내 취향에 안 맞고 못 하겠는데 싶으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시나리오 찾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은데... 플레이어가 공개된 시나리오들을 너무 많이 알고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돌리려면 처음부터 알피 중심으로 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사전 안내와 합의 등을 통해서.